한국여성의 사회진출은 선진국 가운데 맨 꼴찌라는 것이 새삼 확인됐다.영국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국제 여성의 날(3월8일)을 맞아 OECD에 가입한 26개 국가를 대상으로 여성이 일터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는가를 측정하는 ‘유리천장’지수(Glass Ceiling Index)를 집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만점 100의 지수 14)은 최하위인 26위, 일본(35)은 25위를 각각 기록했다. 1위는 뉴질랜드(89), 2위는 노르웨이(86), 3위는 스웨덴(85)이었다. 4위 캐나다(79), 5위 호주(78)부터 12위 미국(72), 14위 헝가리(71)까지는 모두 지수 70대에 속해 중위권을 형성했다. 한편 18위 영국(63), 20위 독일(59), 24위 스위스(53)는 모두 하위권이었다.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 지수는 (1) 대학교육 이수자의 남녀 차이; (2) 여성의 노동력 참가율; (3) 상근직 노동자의 남녀 소득 차이; (4) 경영 고위직의 여성비율 등 요소를 각각 28%의 가중치로 계상하고, 평균임금에서 육아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머지 8%로 해서 산출한 것이다. 각국의 원자료는 <이코노미스트>가 독자적으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 OECD와 국제노동기구(ILO) 통계를 원용했다. 비슷한 조사로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신년호에 ‘삶의 질’ 지수(Where to be born in 2013)을 발표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이 가장 행복할까를 알아보는 세계 80개국 대상 조사에서 한국은 19위로 일본의 25위에 앞섰다. 참고로 1위는 스위스, 6위 싱가포르, 10위 홍콩, 14위 대만, 공동16위 독일·미국이었다. 25년 전인 1988년 <이코노미스트>는 동일한 조사를 했는데 1위 미국, 3위 서독, 6위 일본, 7위 홍콩, 10위 한국이었다. 그때는 싱가포르가 36위였고, 소련은 21위(2013년 러시아 72위)였던 것이 특기할 만하다. 두 시점의 조사를 비교하면 한국은 10위에서 19위로 상대적 후퇴를 한 셈인데, 과연 이것이 옳을까? 최근 빅 데이터(Big data)가 세계경제포럼에서 2012년 떠오르는 10대 기술의 첫 번째로 선정되는 등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빅 데이터는 누적된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치를 추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기술로 중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하는 통계자료는 흔히 부실한 조사와 자의적 기준에 오염되고는 한다. 따라서 위의 <이코노미스트> 지수와 같은 조사들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성경 말씀’과 같은 맹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유리천장은 경제학에서 ‘여성과 소수자가 자격과 능력을 갖췄음에도 기업체 등 조직의 상층부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깨뜨릴 수 없는 머리 위의 장벽’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 2011년 현재 연방정부의 전문직과 행정직의 44%가 여성에 의해 점유됐지만 고위직은 30%만 여성이었다. 또 연봉 7만∼8만 달러의 전문·행정직은 여성이 과반수였지만 9만 달러 이상은 소수에 불과했다. 유리천장과 비슷한 개념의 용어로 ‘Brass Ceiling (군내 여성장교의 진급장벽)‘ ’Stained-Glass Ceiling (교회내의 유리천장)‘ ’Bamboo Ceiling (미국내 아시아계의 진급장벽)‘ ’Concrete Ceiling (소수인종 여성의 이중 장벽)‘ ’Glass Elevator(간호계나 예술계처럼 여성이 다수인 조직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쉽사리 승진하는 현상)‘ 등이 있다. 일터에서의 여성차별의 또 하나 형태는 ‘성별 임금차이(Gender Pay Gap)’가 있다. 조금 낡은 통계지만 2010년3월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OECD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동일 상근직위의 여성임금이 남성보다 38%가 적어 최하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33%로 바로 위였고 미국은 19%, OECD국가 평균은 17.6%였다. 차이가 가장 적은 나라는 벨기에로 9.3%, 뉴질랜드와 폴란드가 10%로 공동 2위였다. 세계역사상 여성인력을 가정노동에서 사회노동으로 이동시키지 않고 경제개발을 이룬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이 산업혁명 시기 여성 및 어린이노동을 광범위하게 동원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일본의 19세기말∼20세기초 방직공장 여공과 한국의 구로공단을 비롯한 전국의 산업공단에서의 여공들의 피땀이 없었다면 산업화와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 중국도 민공과 여성인력의 대량 고용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제조업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1844년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은 착취공장(Sweatshop)을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운동에 직접적 영감을 준 고전으로 남았다. 그러나 1997년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내 걱정은 저임착취공장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라 너무 적은 것”이라고 주장한 이래 반착취노동운동에 이견을 제시하는 일이 잦아졌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후진국이 가난을 벗어나는 길로서 저임금노동이 필요악이라고 보고 여성인력의 고용확대에 적극 찬동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인도가 한국·대만에 뒤떨어지게 된 것은 산업발전단계로 여성위주의 저임노동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슬람국가들에 대해서도 여성의 사회진출을 허용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것도 정치적 가계의 후광과 보수세력의 결집에 힘입은 바 크고 여성 지위향상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보기에는 턱없다. 고위직 여성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고 중견직에도 점유율이 너무 낮다. 고용 및 승진에 쿼터제는 아니더라도 고용목표제 등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을 강구하려는 노력은 진행이 더디기만 하다. 지난 1989년 경찰대에서 여자생도를 90학년도부터 뽑는다는 발표가 있었다. 중앙기자실에서 당시 여성문제를 담당하던 정무(제2)장관에게 “미국처럼 사관학교도 여자생도를 선발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말도 말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군사정권 아래서 군은 성역이었고 남녀차별의식이 아직 강하던 시절이었다지만 내가 보기엔 여성 담당 공직자들의 소극적인 의식이 더 큰 문제였다. 2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성정책에 대해 말만 요란할 뿐 실질적이고 강력한 정책은 요원하다. 양성평등을 실질적으로 유도할 정책이 왜 없단 말인가. 역시 의식이 안이하고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문제는 탁상공론을 넘어 경제·사회·문화적 현장성이 중요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로 들어보자. 학교에서의 폭력방지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방법으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커리큘럼의 일부로 넣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달의 위상’변화를 외우라고 시키는 것보다는 집과 학교에서 왜 폭력을 쓰면 안 되는지를 토론과 체험으로 가르치는 편이 훨씬 낫다. 또 가정폭력이 신고가 되면 경찰이 출동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심리상담과 치료 등을 알선 지원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심리학자 자격이나 훈련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지역사회의 연만한 자원봉사자로 ‘매 맞는 아내’와 ‘때리는 남편’를 위한 상담위원을 충원하면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극에서 극으로 변하는 사회다. 비근한 예로 얼마 전까지 천덕꾸러기였던 ‘동남아출신 아내’가 ‘다문화가정의 기둥’으로 갖가지 행정·경제지원의 대상이 된 것을 들 수 있다. 복지정책에도 일종의 유행이 있어서 한때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다문화가정에 지원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은 형평과 우선순위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사회의 가변성과 적응도에 관한 한 점수를 줄 수도 있는 현상이다. 여성문제도 이처럼 급격히 바뀔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식의 변화는 현실의 변화가 이뤄진 다음에도 한참 지나야만 찾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여성문제의 획기적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꾸준한 노력과 행동이 이어져야 한다. 아울러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는 일이 없도록 여성 자신이 이런 사회적 변화를 앞장서 이끌어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