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50분에 눈이 떴다. 피곤한 탓인지 정신 없이 잤다. 공동 화장실 겸 샤워 실에서 샤워를 하고 라면으로 아침을 먹기 위해 물을 찾았다. 전기 포트는 새하얗게 무언가가 끼어 있었고 손으로 문지르니 하얀 가루가 묻어 나왔다. 데스크에 가서 생수를 달라 했더니 공동 화장실 물을 떠다가 끓이란다. 아침은 그냥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편집국장이 생수 2병을 들고 들어온다. 중국 라면을 끓였다. 맛은 우리나라 라면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양념 건더기가 향신료 들어간 중국음식 맛이었다. | | | ▲ 11시 30분쯤 베이징 공항에 다시 도착했다. 호텔 측의 픽업 서비스 거부로 19원 내고 택시를 타고 왔다. |
짐을 정리하고 11시가 조금 못 돼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어제 저녁에 봤던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젊은 남자 둘이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체크 인 하면서 맡겨 놓은 5만원(중국 돈이 없어 우리 돈 5만원을 보증금으로 맡겼다)을 달라하니 라면 값과 생수 값을 달라한다. 우리 가방에는 컵라면이 2박스나 들어있었다. 컵라면 값과 생수 값을 받는 건 줄 알았으면 우리 것을 먹었을 텐데…라면 값은 그렇다 쳐도 생수 값까지 받다니…녀석들 좀 너무하다 싶었다. 컵라면2개, 생수 2개 합해서 14위안을 줬다. 우리 돈으로 2500원 정도다. 공항까지 태워달라고 요청했다. 차가 고장 나서 태워다 줄 수 없으니 택시 타고 가라고 한다. 일찍 출발하는 사람들은 태워다 준 듯 했으나 버스 기사가 없는 듯 했다. 결국 택시를 잡아 타고 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 | | ▲ 출국 수속을 마치고 '대장금'이라는 식닥에 들어가 현지 맥주인 칭따오 생맥주 한잔을 시켰다. 비빔밥을 비롯 한식을 팔고 있었으나 점심 식사는 기내식으로 하자고 했다 |
짐을 부치고 검색대 앞에 섰다. 가방에 있는 모든 카메라 장비를 꺼내야 했다. 지난해에는 노트북만 꺼내고 카메라 장비는 그대로 가방에 넣고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검색이 엄청 강화됐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1시 30분, 아직 1시간이 넘게 남았다. 대장금이라 써 있는 식당에 들어가 칭따오 생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안주까지 시키길 원하던 점원은 맥주 2잔만 시키니 입을 샐쭉 하고 간다. 칼칼하던 목이 맥주 한 잔에 금새 시원해진다. 프랑스행 차이나 에어에 몸을 실었다. 비즈니스 석을 지나 비상구 바로 다음 자리다. 꼬박 12시간을 가야 한다. 비상구 옆 좌석에 사람이 앉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하나 둘씩 빈 좌석은 사람들로 채워졌고 우리 앞 좌석에도 흑인과 백인이 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양 사이드에 앉았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영화도 한편 보고 350여 페이지의 카메라 매뉴얼도 다시 한 번 정독했다. 그래도 아직 5시간이 남았다. 많은 이들이 장시간의 비행에 피곤해진 몸을 스트레칭 하기 위해 걸어 다녔다. 중국을 지나고, 몽골 하늘을 지나 러시아도 지났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다. 소란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스튜어디스가 음료를 주고 있다. 커피 한잔을 달라했다. 평상시 하루에 5~6잔은 먹었다. 기내식은 비프 & 라이스로 요청했다. | | | ▲ 샤를 드 드골 공항은 규모는 큰 듯 했으나 생각보다 소박했다. |
현지 시간 5시 40분, 드디어 비행기가 프랑스 땅에 내렸다. 날씨는 쌀쌀했다. 우리나라보다 약 5~9도 정도 낮은 온도로 늦가을 날씨 같다. 일본을 경유해서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 먼저 도착한 박종성 기자와 연락을 취했다. 2번 터미널에 있다 한다. 우리가 있는 곳은 1번 터미널이다. | | | ▲ 샤를 드 드골 공항의 터미널 1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비행기는 터미널 2에서 내린다 했다. 일본을 경유해서 날아온 박종성 기자도 2번 터미널에서 내렸다. |
박기자와 반가운 해후를 하고 이제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박원식 편집국장이 안내데스크에 물었더니 지하철은 몇 번을 갈아 타야 하고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단다. 우리의 숙소는 몽빠르나스 근처에 있다. 일단 몽빠르나스까지 가서 걷기로 했다. 안내데스크 직원 친절한 설명으로 우린 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왔다. 샤를 드 드골 공항에서 몽빠르나스까지 가는 버스 티켓은 17유로다. 버스 티켓을 끊으려 티켓 박스 앞에 섰다. 카드 밖에 안 된다고 써있다. 박기자가 카드를 넣고 티켓을 끊으려 했으나 티켓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에 프랑스 사람은 어떻게 버스 표를 끊나 옆에서 지켜 보기로 했다. 그녀와 우리가 시도한 방법은 같았다. 그러나 카드 사용 방법이 틀렸다. 우리는 카드를 넣었다가 바로 뺐는데 프랑스 여인은 카드를 넣고 티켓이 나오고 나서야 뺐다. | | | ▲ 파리 시내 지하철 노선도 |
공항에서 몽빠르나스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6시부터 밤 10:30분까지 30분마다 1대씩 있다고 써있다. 한참을 기다렸다. 표 끊으면서 헤맨 시간까지 합하면 족히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아마도 우리가 버스 타러 나오기 직전에 버스가 출발 했나 보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4번 버스가 도착했다. 4번 버스는 가르 드 리옹역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 몽빠르나스까지 간다 했다. 40여분을 달려 가르 드 리옹에 도달했다. 파리 시내가 아기자기 했다. 현대식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몇 백 년 된 건물들로 가득한 듯 보였다. 그리고 또 20여분, 드디어 몽빠르나스역에 도착했다. 박기자가 스마트 폰으로 구글 맵에 집주소를 입력해서 걸어서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몽빠르나스에서 숙소까지는 직선거리 900m, 실 거리 1.5km란다. 결국 우리 셋은 몽빠르나스에서 집까지 약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까지 가는 길에 앞에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이미 숙소에 도착 약속 시간엔 조금 늦었기에 우린 빠른 걸음으로 재촉하고 있었으나 앞에서 여유롭게 걷는 두 사람과의 거리는 이상하게 좁혀지지 않았다.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우린 빠르게 걷고 있고 저들은 여유롭게 걷는데 왜 거리가 좁혀지질 않지? 보폭의 차이 때문인가? 하고 있는 사이 길은 갈라졌고 그 둘은 사라졌다. | | | ▲ 걷는 길에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보였다. |
20여분 넘게 가방을 끌고 걸은 듯 하다. GPS상의 아파트 위치는 거의 주소지에 다 온 듯했다. 아파트 주인은 집에 없고 주인의 조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다는 메일은 받은 상태다. 눈 앞에 차의 본 네트를 열고 열심히 차를 손보는 남자가 보였다. 편집국장은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그에게 찾아가 묻는다. 그가 아파트가 몇 호냐고 묻는다. 호는 모른다고 했다. 편집국장은 그에게 전화번호를 주며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 그 남자는 전화 통화를 하더니 앞으로 조금만 더 걸어 가면 아파트 호수가 나온다고 방향을 알려줬다. | | | ▲ 롤랑가로스 입간판이 서 있다. 저 곳에 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정현이 예선 1회전 탈락해서 아쉽긴 하지만 우리나라 주니어들이 조만간 이곳으로 올 것이다. |
아파트는 조그만 했다. 우리나라의 15평 정도의 크기 될까? 주인의 조카로부터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우린 짐을 풀었다. 오늘 하루는 오로지 프랑스까지 날아오고 숙소를 찾는데 썼다. 현재 시간으로 밤 12시가 넘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오전 7시가 넘었을 게다. 서울은 이곳 파리보다 7시간이 빠르다. 내일은 이제 롤랑가로스로 가서 경기장과 선수들을 만날 차례다. 눈이 빡빡하다. 이제 눈을 좀 붙여야 겠다. | | | ▲ 우리 숙소는 아이가 썼던 방인듯 했다. 3평 남짓? 비좁긴 하지만 셋이 지낼만 하다. |
| | | ▲ 프랑스 도착하여 수속을 밟기 위해 이동 중이다. 에스컬레이터가 꽤 길었다. |
| | | ▲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갔다, 중세에 지어진 듯한 건물들이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
| | | ▲ 우리나라의 파고다 공원같은 모습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식사 급식이 있는 듯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
| | | ▲ 몽빠르나스 역에 내려서 이제 숙소까지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스마트폰 지도를 이용해 찾아 갔다. 약 30여분이 걸렸다. |
| | | ▲ 파리에서의 첫 식사는 컵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우린 컵라면 2박스, 쌀, 김치, 밑반찬을 바리 바리 싸들고 파리에 입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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