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즈보나레바가 요술을 부렸다.
11일(한국시각) 미국 US오픈 여자 단신 준결승에서 톱시드 캐롤라인 보즈니아키를 6-4 6-3으로 돌려세우고 윔블던에 이어 연속해서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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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그렇듯이 베라는 늘 중심이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선수였다. 준결승 뒤 보즈니아키와 악수를 나눌 때도 카메라는 베라의 등 뒤에서 보즈니아키를 중심으로 앵글을 잡았다. 베라의 등과 보즈니아키의 가슴이 동시에 나왔다.
특출난 외모도 없고 숱한 화제거리를 뿌리는 선수가 아닌 베라는 그저 테니스 열심히 하는 러시아선수에 불과했다. 남자에 비교하면 니콜라이 다비덴코라고나 할까. 그렇듯 별 인기가 없었다.그러다보니 경기중 벤치에서 수건이나 쓰고 있을 수 밖에.
이날 열린 여자 준결승전에서도 당연히 보즈니아키의 승리를 다들 기대했고 준비했다. 보즈니아키 역시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거리낄 것 없는 베라는 그 어느 경기보다 침착하게 임했고 승승장구하며 최저게임 기록으로 준결승에 오른 인어공주 보즈니아키는 공이 붕붕뜨고 라켓에 공을 정타로 맞추지 못했다. 한마디로 조시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5자루 라켓 가운데 3자루의 스트링이 끊어지며 조시가 맞지 않아야 할 선수는 베라였는데 정작 리턴 다운 리턴을 못한 것은 보즈니아키였다. 불비한 라켓으로 보즈니아키의 모든 공을 리턴해 상대 고난도 기술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한 것은 되레 보즈니아키였다.
즈보나레바는 "경기전 라켓 5자루 스트링을 새로 수리했다"며 " 한시간사이 3자루가 끊어졌다. 이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는데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상한 쪽은 보즈니아키였다. 실수없는 선수인 보즈니아키는 이날 31개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며 경기를 망쳤다. 물론 아서애쉬스타디움에 올해 유난히 불어대는 바람으로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US오픈 시리즈 13연승, 올해 하드코트 31승의 경기를 하면서 이런 경우는 보즈니아키로서도 처음 당한 일이다.
보즈니아키는 " 베라는 거의 실수가 없었고 모든 샷을 원하는 데로 쳤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실수가 많았다"고 패배를 자인했다.
결국 윔블던 이전에 2009호주오픈 4강이 그랜드슬램 유일한 최고 성적을 낸 베라는 이제 2개 대회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물론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이번 대회 전경기 무실세트로 결승에 올라 컨디션이 심상찮은 것도 사실이다.
어린시절 만화영화 가운데 뱀 베라 베로라는 이름을 가진 착한 요괴인간 이야기를 즐겨본 적이 있다.
거기 나오는 착한 언니 베라는 요술을 부려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는 일을 한다.
덴마크의 명물 보즈니아키 인어공주와의 경기에서 베라는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라켓 줄은 수시로 나가고 바람은 불고, 자신이 친 공은 기가막히게 들어가고 상대 친 공은 모든 지 넘겨댔다. 이런 정도라면 스물여섯나이에 첫 그랜드슬램 우승 못하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베라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힘겹게 이긴 킴 클리스터스와 우승을 다툰다.
테니스코리아 박원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