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맥가이버 김치완을 기억하십니까?
김치완(전 대한항공)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 테니스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며 데이비스컵 및 국제대회에서 종횡무진하였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대표팀 주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며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소속팀 후배인 장의종과 호흡을 맞춰 복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특히 김치완- 장의종 조는 1992년 2월 중국과의 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그룹 I 예선에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샤지아핑-멩창화조를 6-2 6-4 6-2로 이기며 한국이 예선전을 통과하는데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때 김치완은 당시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머리를 길러 '울산의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김-장 조는 그 해 3월 뉴질랜드와의 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 준결승에서 KAL컵 복식 준우승자인 에번든과 스티븐 조를 제압하고 본선 플레이오픈전에 오르는데 일조하였다.
당시 김치완-장의종 조는 아시아 최고의 복식조를 불리우며 아시아 무대를 호령했는데 특히 김치완의 서브앤발리는 상대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후 1997년 코트를 떠난 김치완은 200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현재 필라델피아에 본부가 있는 한미문제연구소(ICAS: Institute for Corean-American Studies)에서 테니스 교육프로그램의 커미셔너로 활동하고 있다.
한미문제연구소( www.icasinc.org)는 1973년에 설립된 비영리기구로 주로 한반도에 관한 사안들을 연구하는 싱크탱크(Think-Tank)단체로 저명한 정치인 및 유명인사들을 초청해 세미나 또는 토론회를 주최하고 있으며 미의회에서 여론을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테니스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해마다 '자유의 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일레인 차오 전 노동장관, 찰스 카트먼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 등이 수상한 바 있다.
30일 김치완은 테니스코리아를 통해 근황을 전해왔다. 다음은 김치완과 테니스코리아가 나눈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Q. 미국으로 이민을 간 계기는?
A.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항공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후 6~7년동안 개인사업을 하였다. 그후 아이들 교육문제로 일본과 미국 유학을 생각하던 중 여러 가까운 지인들의 권유로 2006년 미국 동부 버지니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큰 아들은 테니스를 접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현재 테니스를 하고 있고 나는 열심히 큰 아들에게 테니스를 지도하는 등 공부와 병행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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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영역은?
A.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테니스이다. 테니스를 통해 미국 사회에 공헌을 하고 유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 내가 활동 할 수 있는 영역이다.
A. 테니스 교육 프로그램의 커미셔너로 활동하고 있다. 테니스 교육 및 테니스대회를 총괄하고 ICAS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고 있다.
Q. 4월 16일에 ICAS Liberty Tennis Classic이 열리는데, 이 대회의 취지는?
ICAS 테니스 프로그램은 미국 시스템을 적용한다. 테니스를 잘해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한국 유학생 부모들의 현실성이 결여된 지나친 생각이라 본다. 진정한 스포츠 장학생은 스탠포드 대학의 미쉘 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 현실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한국 이민자 중 테니스 수퍼스타는 아직 탄생하지 않고 있다 . 따라서 ICAS 테니스 프로그램의 목적은 우수한 스타를 만드는데 비중을 두기 보다는 ICAS 테니스 교육 미션과 아서애쉬의 테니스 교육 철학 (“From what we get, we make a living; what we give makes a life.”) 에 눈높이를 함께하는데 있다 . 이러한 관점에서 ICAS는 이번 테니스대회에 아서애쉬 유스 테니스 교육재단의 회장과 우수 청소년들을 초청했다(자세한 대회 요강 보기)
Q. 향후 이 대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은?
A. 앞서 말씀 드린대로 테니스 대회 1, 2등을 목표로 두는 것보다 테니스를 통해 참가자 모두가 챔피언이 되고 서로 격려 및 포용하며 또한 스포츠맨십과 리더십 스킬을 개발하며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와 또 더 큰 사회에 공헌하며 자유와 인류애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한국에도 ICAS Liberty Tennis Classic을 개최하고자 현재 기획중에 있다.
Q. 미국에 체류하면서 한국 테니스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A. 미국에 거주한지 2년 후 워싱턴DC에서 Legg Mason 투어대회가 있었다. 반갑게도 윤용일과 이형택이 대회에 참가한다고 캘리포니아에서 연락이 왔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데이비스컵을 뛴 만큼 매우 기뻤다(김치완은 국가대표가 된 것을 테니스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한때 같은 대표팀 후배와 동료로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 무척 기다려졌고 이형택의 경기를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또한 한국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한 것을 보고 선배로서 가슴이 뭉클했다. 당시 나에게 테니스 지도 받았던 유소년들이 1주일동안 동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요즘 한국테니스가 힘든 시기에 놓여 있는 것 같아 선배로서 마음이 아프다. 장의종, 윤용일, 이형택과 같은 훌륭한 선배들의 정신을 본받아 한국 테니스를 넘어 세계적인 스타가 한국에서 탄생하기를 멀리서 기대해본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현재 한국 테니스 유망주들의 기량을 더 강화할 수 있는 승리의 전략(winning strategy)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한다.
김치완은
1968년 7월 13일 울산 출생
울산초등학교 3학년 때 테니스 시작
울산제일중학교 울산공고 계명대학교을 거쳐 1990년 대한항공에 입단
1991년 실업그랑프리 단식 우승
1990년과 1991년 한국선수권대회 단식 준우승
1991년 한국 테니스국가대표 발탁
1991년 장의종과 호흡을 맞추며 4개 국내대회와 필리핀, 태국서키트 등 7개 국제대회에서 복식 우승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 자동 출전권 획득
1994년 한국테니스 복식 최강전 우승외 다수
현재 ICAS 테니스 교육프로그램 커미셔너로 활동 중
<데이비스컵 통산 전적>
단식: 2전 1승 1패
복식: 8전 5승 3패
ICAS Liberty Tennis Classic 대회는
ICAS Liberty Tennis Classic Invitational은 2010년 대회 9월 25일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포시즌 테니스 클럽에서 처음으로 1회 대회가 열렸다 . 테니스를 통한 청소년 교육발전의 목적으로 진행되는 ICAS 테니스 프로그램은 1년에 2차례로 진행되는데 봄에는 미동부 필라델피아지역에서 가을에는 버지니아 페어팩스지역에서 개최된다.
2010년 9월 1회 대회 때 특별손님으로 현재 주미 카자흐스탄 대사인
Erlan A Idrissov가 참여했고 올해 대회는 아서애쉬 유스 테니스 교육재단의 프레지던트인 Kenny Holdsman과 우수 주니어 선수 5명이 특별손님 자격으로 참가한다.
정리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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